건축은 자신만의 역사가 있고, 그것은 더 넓은 일반사, 문화사와 함께 존재합니다. 건축에는 자신의 형상을 정립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도 있습니다. 건축은 공학을 분리시켰지만 여전히 공학이며, 그 토대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축을 소비하고 사용하는 다양한 그룹과 층위가 있습니다. 이때 건축은 상품이기도 하고 또 다른 기록과 정리, 전시의 대상이도 합니다. 이 모두가 모여서 건축이라는 분과학문을 만들고 나아가 생태계를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어느 것 하나가 사라지면 이 생태계와 학문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탈건학부’를 개설합니다. ‘탈건’은 건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다시 넓게, 멀리, 새롭게 펼치고 싶다는 뜻입니다. 탈건학부의 수업들이 희미해진 건축의 다른 영역들을 회복하고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확장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건축 큐레이팅
건축을 매개로 벌어지는 전시 생산자들의 큐레이토리얼 활동을 살펴보는 전문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2019년 포럼 형식으로 처음 열렸던 건축큐레이팅워크숍(CAW)이 2023년부터 ‘탈건학부’의 정규 수업으로 자리했습니다.
건축 이론
건축 이론의 핵심 텍스트를 미학과 철학 등 관련 텍스트들과 나란히 읽습니다. 이 독해는 서구 건축 이론의 정전을 회고적 시선으로 재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축 이론이 딛고 서 있는 토대를 밝히고, 보편적이라고 여겨져 온 이론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체계로 읽어 고전주의의 의미를 재검토하고, 18-19세기에 불거진 텍토닉 논쟁을 관념론 미학과 견주어 읽음으로써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텍토닉에 대한 이해를 넓힙니다. 또 20세기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을 둘러싼 쟁점을 재조명해봄으로써,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물음인 건축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해봅니다. 이론에 대한 재독해는 현재에 대한 시선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건축 이론의 무효성, 건축의 비참조성을 주장하는 비정치적이면서 철저히 정치적인 최근의 입장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수업은 강사의 강의와 참가자들의 강독으로 이루어지며, 건축사 및 문화사 등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전제합니다.
건축 미디어
건축을 중심으로 한 글(스토리)을 생산하는 수업입니다. 라이팅(글쓰기), 리포팅(취재), 에디팅(편집), 퍼블리싱(발행)으로 이루어지는 미디어 생산의 실제를 개념적으로 익히고 실습합니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미디어입니다. 취재, 편집, 발행은 모두 글쓰기를 바탕으로 하는 생산 작업입니다. 본 워크숍에서는 글쓰기, 글쓰기에 수반되는 작업, 쓴 글을 다듬고 내보내는 일을 실습, 강의, 피드백을 통해 실질적으로 배웁니다. 그 과정에서 정보, 글, 콘텐츠 생산의 기본 기술을 복합적으로 이해하고, 확장된 개념의 출판(책, 전시, 영상, 소셜미디어 등)을 각자 모색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현대 건축사
서양 건축사, 동양 건축사, 현대 건축사 등 여러 건축사 수업이 건축대학에 개설되어 있지만, 해방 후 한국 현대 건축을 본격 조명하는 강의는 드문 편입니다. 본 현대 건축사 강의 시리즈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5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 건축의 역사를 몇 차례에 걸쳐 촘촘히 다루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 발전국가가 설립하고 동원한 건축 조직, 콘크리트 한옥과 도시한옥, 두 거장 신화, 젠더와 실내의 변화로 바라본 아파트, 포스트모더니즘과 새롭게 발견된 모더니즘, 유학 세대의 등장 등, 한국 현대 건축의 주요 쟁점을 발굴해 드러내고 역사적으로 평가하고자 합니다. 몇몇 예외적 인물과 주요한 건축물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기존 논의들을 한 걸음 떨어진 새로운 시선으로 보충하고 확대하려는 이 강의는 20세기 한국 현대 건축사를 다시 쓰는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건축 컴퓨테이션
건축설계 자동화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습니다.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건축가 각기 다른 분야에서 모인 사람들이 맹인 코끼리 만지듯 건축설계 분야를 더듬으며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편, 건축계에서는 자동화의 대상인 '설계'에 대해 저마다 다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필연적이고, 파괴적이기보다 상호보완적일 것입니다. 이 강의가 설계 자동화에 대한 막연한 안개를 걷어내는 시작점이길, 나아가 기술과 건축이 협력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논의로 발전되길 바랍니다.